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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독일 중원의 핵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y 이카맨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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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

독일의 중원의 핵이자 사령관이었던 그에 대해 알아보자.

1984년 로젠하임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슈바인슈타이거 그는 뮌헨남부의 도시에 태어나 자연스레 바이에른 뮌헨이란 팀을 동경하며 자라왔다. 6살부터 축구를 시작한 그는 지역 유스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그는 유스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였기에 2001년 3부리그에 속해있던 바이에른 뮌헨 2군에 승격을 하게된다. 당시 2군팀엔 필립 람과 함께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다시 독일축구의 위상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등장이전 뮌헨의 희망은 2,3년간 부상으로 활약을 보이지 못하던 세바스티안 다이슬러였다. 그가 무릎부상으로 시즌경기를 소화해내지 못하자 때마침 슈바인슈타이거가 등장을 하였고 중원엔 프링스, 제 호베르투, 오웬 하그리브스등 탄탄한 중원을 가진 뮌헨이었지만 슈바인슈타이거가 모두를 밀어내고 주전을 꿰차게된다. 이를 계기로 20살의 어린 나이에 유로2004 독일 국가대표로 선정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녹슨 전차라는 이미지를 벗어내지 못하고 유로에서 조별탈락을 하게 된다. 2006년 월드컵에도 나서 팀을 대회 3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이끌며 부활의 신호탄을 쏴올렸다. 또한 클럽팀에선 발락과 제 호베르투의 이탈에도 슈바인슈타이거의 안정적인 플레이로 팀에 헌신을 한다. 이때까지 그는 좌측면을 주로 보고있었는데, 발락의 은퇴이후 그의 약점이던 느린발과 중원의 공백으로 수비에게도 부담이가며 2007년 팀은 리그 4위를 차지하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도 따내지 못해 흔들리게 된다. 이후 리베리의 합류로 오른쪽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실패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2009년 루이스 반 할 감독이 부임하며 그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자리를 내어주고 그는 지금까지와 다른 퍼포먼스를 보인다. 양쪽 측면에 리베리,로벤이 있으므로 그의 약점이었던 스피드와 돌파를 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의 장점이 부각이 되었다.

센스있는 힐킥

 2010년 월드컵에 진출한 독일은 4강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을 만나 탈락하였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대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준선수로 칭찬받았고 그해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12/13시즌 그는 뮌헨이 독일 클럽 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공격과 수비가 동시에 가능했던 선수는 당시 바르셀로나의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슈바인슈타이거 두 선수만 가능하다고 하인케스 감독은 생각하였다. 그의 성장과 함께 독일 축구는 진화하게 되었고 어느덧 30이 된 그는 과거의 폭발력은 없어졌지만 외질과 뮐러가 그 역할을 해주고 그는 허리라인에 더욱 신경을 쓰며 중원에 볼 배급을 담당하여 경기장 전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2014년 월드컵을 앞두고 지단과 카푸는 그를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치켜올렸다. 2014월드컵을 우승을 하며 결승전 최고평점을 달성하게된다. 축구의 최고점을 찍은뒤 그는 무릎 부상으로 전반기 아웃이되고 뮌헨 주전자리도 불안해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이적설이 돌게 되며 결국 이적을 하게된다. 하지만 맨유 이적 1년만에 미국 시카고로 이적을 하게된다. 2019년 10월 8일 시카고에서 3년을 보낸 그는 은퇴를 하게된다.

 

그의 플레이스타일

그는 공격 방향과 템포 조절, 공수 밸런스까지 책임졌던 육각형 중앙미드필더이다.

팀이 수비진영에서 공격을 만들어갈때는 최종수비라인까지 내려와 롱패스를 쏴주고, 상대 압박 밀도를 보고 공격 활로가 될 선수에게 볼배급을 해주며, 필요에 따라 자신이 상대 박스까지 침투해 골과 어시스트까지 쏟아냈다. 

환상적인 중거리슛

여기에 최정상급의 압박 능력까지 보유했다. 탈압박 능력은 이니에스타 급까진 아니지만 한두명 정도 압박은 간단한 탈압박 스킬로 벗겨내 볼을 잘 간수했다. 그리고 정확한 볼배급과 패스 센스, 수비력, 활동량, 대포알같은 중거리슛 모두 최상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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