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

맨유 왼발의 마법사 라이언 긱스

by 이카맨 2024. 1. 3.
반응형

라이언 긱스

라이언 긱스에 대하여

조지 베스트의 재림이라 불리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40살까지 현역으로 뛴 왼발의 마법사 라이언 긱스.
1973년 웨일스 카디프에서 태어난 긱스는 14세에 맨체스터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맨체스터 시티 스카우터에게 발굴되어 유스 클럽에서 축구를 하게된다. 이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정말 드리블을 잘하는 소년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되고 긱스의 생일날 긱스의 집에 직접 찾아간다. 이 당시 긱스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나 집을 나간상태였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상실감에 아무것도 안하고 집밖 출입조차 하지 않던 그에게 퍼거슨 감독은 "나의 사무실은 언제든 열려 있다. 어려운 감독이라 생각치 말고 언제든 찾아와라 축구가 아니라도 좋다. 나를 아버지라 생각해라"라고 말했고 긱스는 이 말 한마디에 그의 축구인생에 있어 이정표를 정하는 말이 되었다. 결국 14세의 나이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에 입단을 하게된다. 맨유 유스에서 주장까지 하며 기량이 오른 그를 잉글랜드 국가대표에서 부르기도 하였지만 그는 조국 웨일스를 잊지않았고 웨일스에서 뛰기로 한다. 1991년 3월 17세의 나이로 에버튼전에 교체 출전을 하며 프로무대에 데뷔를 하게 된다. 91/92시즌 주전선수인 리샤프의 부상으로 주전기회를 얻게 된 긱스는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맨유의 주전선수로 입지를 점점 다져간다. 92/93시즌 조지 베스트의 등번호 11번을 물려받고 새로 출범한 프리미어리그에서 팀을 리그 최정상자리로 올려놓는다. 바로 이듬해엔 리그우승과 FA컵 우승을 동시에 하며 더블을 이뤄내며 전성기에 돌입한다. 그때 그의 나이 20세였다. 주변 언론과 팀에선 그의 완성된 플레이에 '조지 베스트의 재림'또는 '왼쪽의 지배자'라는 별명으로 경기를 휘젓고 다닌다. 특히 왼쪽 윙어로 나섰을 때 보여주는 그의 드리블은 조지 베스트를 뛰어 넘는다는 평도 많이 나올정도였다. 전성기에 돌입한 그는 스피드,크로스,득점,전술 이해도 그 무엇도 빠지는게 없는 완벽한 완성형 윙어였으며, 프리킥까지 완벽했다. 95/96시즌 맨유는 스쿼드를 대거 바꾸었고 베컴,스콜스,네빌형제등 화려한 스쿼드로 리그와 FA컵우승 2연패를 달성한다. 98/99시즌 그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팀은 트레블이라는 역사를 이루어 냈다. 이때 FA컵 준결승 아스널전에서 한명이 퇴장당한 수적열세의 상황에 말도 안되는 멋진 드리블후 골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는다. 당시 이 골은 전세계가 그를 주목하게 만들었으며, 여러 팀에서 그를 주목하였지만 그는 맨유와 재계약을 하게된다.

FA컵 준결승 아스날전 결승골

당시 맨유의 오른쪽엔 에이스 넘버인 7번을 달게된 베컴이 있었지만 팬들은 그를 에이스라 생각하지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바로 반대쪽인 왼쪽에 긱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90분 내내 도움을 주는 선수가 베컴이라면 긱스는 단 한순간에 경기를 뒤바꿀 능력이 있는 해결사적 능력을 갖춘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01-03년 까지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리그 최강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어느덧 그의 나이 30대였고 맨유는 새로운 젊은 선수를 영입하여 그의 시대가 저문다는 팬들도 있었지만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호날두,루니,박지성과 주전경쟁을 펼친다. 나이가 들어 기동력이 떨어진 그는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을 하며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클래스를 보여준다. 07/08시즌 챔스우승과 리그3연패를 달성하며 더블을 이루어냈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나이가 들면 은퇴를 준비하는 여타 다른 선수와 달리 그는 자신의 몸을 잘 이해했고 화려함을 포기하고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 빠른 두뇌 회전으로 경기를 조율해나가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 하였지만 그의 사생활이 터지며 그가 쌓아왔던 명성과 모든 커리어가 날아가 버리게 생겼다. 사생활이 터진 이후에도 팬들의 야유는 무시한채 경기에 집중을 해 11년 골든 풋을 수상했고 맨유와 연장을 계약한다. 12/13시즌 40의 나이로 무너진 맨유의 중원을 캐릭과 먹여살린다. 13/14시즌 모예스가 부임을 하며 퍼기의 아이들중 퍼거슨감독을 포함한 모든 선수가 이적 및 은퇴를 하였고, 긱스는 코치겸 선수를 맡아 가끔 경기에 나선다. 14년 5월 19일 은퇴를 하게 되며 맨유 통산 963경기 168골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플레이스타일

전성기 긱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귀신같은 드리블.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를 꼽을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전성기 당시 긱스의 드리블은 말 그대로 알고도 못막는 수준이었고, 입벌어지는 스피드의 돌파에 이은 논스톱 러닝크로스의 정확도는 당시 누구와도 비교를 거부했다.

주특기인 드리블을 이용한 돌파와 스피드, 왼발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왼발 크로스 능력과 패스가 강점이다. 거기다 득점력, 전술 이해도, 개인기 등등 윙어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완벽한 선수였다. 하물며 헤딩능력마저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 킥의 정확도 역시 천하의 데이비드 베컴과 번갈아가며 프리킥을 찰 정도였으며 베컴이 레알로 떠난 후에는 팀의 전담 키커였다.

 

단점으로는 지나치게 왼발만 잘 사용하고 오른발은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슈

그는 맨유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며 바른 생활 사나이 같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다.

바로 불륜사건이다. 장모님과 제수씨등 여러 불륜상대가 나왔으며, 이로 수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남기게 된다. 이 후 불륜의 아이콘이라 불리게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