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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불가리아의 백작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by 이카맨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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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바토프

그의 이야기

우아한 플레이와 신이 들린것 같은 미친 볼컨트롤 능력을 보여준 불가리아의 백작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81년에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베르바토프의 아버지 이반 베르바토프는 CSKA 소피아에서 활약을 한 축구선수 출신으로 그에게도 운동선수의 피가 흘렀다.
어릴적부터 AC밀란의 팬이 었으며, 비슷한 연배의 여느 공격수들처럼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선수 마르코 반 바스텐을 우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컸는지 부상으로 반 바스텐이 은퇴를 하게 되자 오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동경하는 선수를 우상으로 삼으며 축구선수에 대한 꿈과 실력을 키워나갔다. 베르바토프는 그의 고향 클럽인 피린 블라고에브그라드에서 유스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92경기에서 77골을 득점하며 여기저기에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곧 CSKA소피아로 팀을 옮겨 18살의 어린 나이로 프로데뷔를 하게된다. 한낱 유망주였던 그가 두각을 드러내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9/20시즌 27경기 14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잘나가던 그는 라이벌인 레브스키와의 경기에서 여러 득점찬스를 놓치는 모습을 보이며 기대하던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게 되었다. 결국 리그 우승에 실패하였고 그 책임은 베르바토프가 뒤집어 쓰게 되었다. 다음 시즌 11경기 8골이라는 좋은 모습으로 다시 간판 선수로 우뚝 서게 되었으며, 불가리아 국가 대표에서도 입지를 다졌다. 자연스레 빅클럽들의 관심이 따라왔다.


2001년 1월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이적을 하게된다. 시즌 도중 이적을 하게 된 그는 팀에 녹아드는데 애를 먹어 처음에는 주전이 아닌 조커로 활약했으나 이후에는 주전으로 성장하여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한다. 비록 리그 우승이나 챔스 우승은 달성하지 못 했으나 2002년에는 챔스 결승에 진출하여 출전해서 준우승을 달성했다. 이 때가 레버쿠젠이 미하엘 발락과 함께 그 유명한 콩레블(트리플2위)을 기록한 시즌이다. 점점 좋은 모습을 보이던 그는 결국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를 뚫지 못해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아쉬운 시즌이었다. 다음시즌 주전으로 자리잡은 그와 달리 팀은 주전선수의 이적과 부상으로 지난 시즌에 비해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결국 그는 4골을 기록하게 된다. 점점 우승과 멀어져 가는 레버쿠젠은 재정상태와 점점 성장해가는 베르바토프의 야망을 채워주기엔 모잘랐고 맨유를 비롯한 여러 클럽의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2006년 여름에 토트넘으로 이적을 하며 그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베르바토프는 로비 킨과 투톱을 이루며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베르바토프가 머리와 발을 이용하여 빈 공간에 볼을 뿌려주면 로비 킨이 이를 마무리하는 형식이 주요 득점 루트였다. 첫 시즌 그의 성적은 49경기 23골이라는 좋은 성적을 보여준다. 06/07시즌 토트넘 최우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린다. 토트넘에서 두 번째 시즌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2008년 리그컵을 들어올리는 좋은 시즌이었다. 그런 그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고,이적 협상에 소극적이었던 다니엘 레비 회장의 사무실을 찾아가 책상을 발로 걷어차면서 다소 과격하게 보일 수 있는 항의와 2008-09 시즌 개막 이후 태업성 플레이를 보이면서 이적 시위 끝에 2008년 9월 1일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 4,075만 파운드의 당시 프리미어 리그 역대 2위의 엄청난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입단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입단한 그는 왕성한 활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팀의 움직임에 많이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에게 가면 공격 흐름이 끊긴다는 평을 많이 들었으며 09/10시즌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를로스 테베즈가 팀을 떠나며 그 공백을 매우지 못해 더욱 혹평을 들었지만 리버풀전 해트트릭, 블랙번전 5골 몰아넣기등 원기옥을 모아서 골을 넣는다는 조롱을 들으며 이기적인 플레이를 많이하는 게으른 선수로 평가가 되었지만 정작 그는 "게으른게 아닌 똑똑하게 플레이하는거다"라며 게으른 천재의 면모를 보여준다. 결국 11/12시즌 종료 후 로빈 반 페르시의 영입으로 설 자리가 없어진 그는 떠나게 된다.

그 이후 풀럼과 AS모나코등 여러 구단을 돌아 다니다 2019년 09월 19일에 은퇴를 하게된다.

 

플레이스타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볼 터치에서 그의 뛰어난 기술과 창의성으로 유명한 축구 선수입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정교한 볼 터치와 순발력 있는 기술로 가득차 있습니다.

먼저, 그의 볼 터치는 매우 세밀하면서도 빠르게 이루어집니다. 그는 공을 받자마자 순간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상대 수비수들의 위치를 예측하여 뛰어난 판단력을 발휘합니다. 이로써 그는 상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빠르게 팀의 전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베르바토프는 공을 조작하고 다루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의 발목 컨트롤은 정교하며, 공을 미묘하게 움직여 상황을 자신의 희망대로 만듭니다. 상대 수비수들이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과 터치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그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베르바토프는 볼을 다룰 때의 창의성이 돋보입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창의적인 터치와 플레이를 펼치며, 팀에게 예상치 못한 공격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창의성은 그를 상대로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상대 수비수들에게 골 양보를 억지로 하게 만듭니다.

요약하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볼 터치는 세밀하면서도 빠르며, 그의 발목 컨트롤과 창의성은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은 그를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만들어 냈으며, 그의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단점으로는

체력과 스피드의 한계: 베르바토프는 기술적인 면에서 뛰어난 플레이어이지만, 체력과 스피드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빠른 상대 수비수에게 맞설 때에는 상대에게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장거리 달리기나 높은 스피드를 통한 순발력은 그의 단점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물리적인 도전에 대한 취약성: 큰키에 비해 공중볼 경합에서 상대 수비수와의 대결을 피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헤딩이나 물리적인 도전에서는 상대에게 밀리기 쉬웠으며, 이는 그의 물리적인 강도에 대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개인주의: 베르바토프는 때로는 과도한 개인주의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공을 갖고 있을 때 자신만의 기술을 펼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로 인해 팀 전술에 어긋나는 순간이 있었고, 이로 인해 상황을 놓칠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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