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

스트라이커의 정석 마르코 반 바스텐

by 이카맨 2023. 12. 22.
반응형

마르코 반 바스텐

그의 이야기

티에리 앙리,안드레 셰브첸코,필리포 인자기,뤼드 반 니스텔로이등 70년대생 스트라이커의 우상이자 스트라이커의 정석 마르코 반 바스텐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유년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지역의 유소년 축구팀에서 뛰다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16세의 나이로 네덜란드의 명문팀 AFC 아약스로 팀을 옮기게 되며 1982년 4월 3일 NEC 네이메헌과의 경기에서 토탈싸커의 아이콘 요한 크루이프와 교체되어 들어가 곧장 데뷔골을 넣으며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이 경기를 보고 사람들은 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며 토탈과 압박이 바뀌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경기는 아약스의 5:0으로 대승하게 된다.
다음해인 82/83시즌 아약스의 주전급 스트라이커로 자리잡은 반바스텐은 그 시즌 20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우승에 기여한다. 그 다음해인 83/84시즌 크루이프가 떠나며 팀의 주전으로 자리를 잡고 26경기 28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하게 된다. 20살도 되지않은 그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새로운 슈퍼스타로 떠올랐고 19살이던 1983년 9월 국가대표로 뽑혀 아이슬란드전에 데뷔를 하게 된다.축구선수 아버지와 체조선수 어머니의 장점을 받아 팔다리가 길었고 우아한 플레이를 자주 선보여 위트레흐트의 백조라고 많이 불렸다. 그 후 요한 크루이프가 아약스 감독으로 돌아왔고, 그는 크루이프의 지도아래 축구를 하며 성장을 하여 85년22골,86년 37골,87년 31골을 넣으며 84/84시즌부터 86/87시즌까지 4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이 기간에만 넣은 골이 112경기 118골을 넣으며 경기당 1골을 넘는 말도 안되는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87년에 유럽 전체에 가장 많은 득점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다. 이러한 기록들이 그가 20대 초반에 세운것이라 세간은 그의 행보에 집중을 하였다.
그 당시 그가 좋은 실력을 보여준것과 별개로 네덜란드 축구는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1980 유로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지 못하였고, 82년 월드컵은 예선탈락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반 바스텐의 등장은 네덜란드 축구의 부흥을 꿈꾸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 와중에 AC밀란에서 영입제안이 왔고 86년 반바스텐은 축구생활 평생을 자신을 괴롭힐 발목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ac밀란 이적 후 부상으로 첫 시즌은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고 11경기 3골이라는저조한 모습을 보였지만 팀 AC밀란은 같이 영입된 루드 굴리트의 맹활약으로 8년만에 리그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굴리트는 발롱도르를 차지하게 된다. 

1988년 서독에서 열린 유로대회에서 부활을 꿈꾸던 그는 네덜란드의 명장 리누스에게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에 승선하게 되었고, 감독은 젊은 선수를 기용하려 하여 반바스텐을 중용하였고, 루드 굴리트를 게임메이커로 기용하고 레이카르트와 쿠만에게 뒤를 받치게 하였다. 오렌지 삼총사와 그 팀은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오르게 된다. 특히 반바스텐은 잉글랜드전 해트트릭을 하며 다시 본인의 가치를 끌어올렸고, 결승에서 소련을 만난 네덜란드는 반바스텐의 환상적인 발리 골을 넣으며 네덜란드 역사상 최초의 유로대회 우승컵을 들게 된다. 동시에 반 바스텐은 득점왕과 MVP까지 차지하고 발롱도르까지 차지하게 된다.다음 시즌 AC밀란에서 좋은 활약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두골을 터트리며 팀을 유럽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게된다. 이 같은 모습으로 89년 2번째 발롱도르를 차지하게 되고 1990월드컵에 12년만에 네덜란드를 본선무대에 올렸다. 오렌지 삼총사가 함께 출전을 하게되어 많은 기대를 하였지만 생각보다 풀리지 않아 16강에서 1:2로 서독에게 패하고 만다. 이 월드컵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월드컵이다. 아쉬움이 가득했던 그는 소속팀으로 돌아와 더욱 열심히 하여 90년에 AC밀란 소속으로 처음 득점왕을 차지하고 챔피언스리그 최강자의 자리를 지켰다.92년도엔 2번째 득점왕이 되었고, 이시즌은 무패로 우승을 하며 역사상최강의 팀이라는 말을 들었다. 본인은 3번째 발롱도르를 차지하며 요한크루이프,미셸 플라티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이듬해부터 발목 부상이 계속 재발되어 점점 출전 경기가 줄어들고 젊은 나이지만 시련이 찾아와 1995년 31살의 반바스텐은 은퇴를 하게 된다.

 

플레이스타일

반 바스텐은 볼 컨트롤에 있어 강점이 있었고, 모든 공을 시저스, 오버헤드,슬라이딩,발리등 슛으로 잡아내는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매우 우아한 선수로 회자되고 있고, 양발을 자유자재로 썻으며 공중전과 연계가 자유롭게 가능하고 킥력 및 슛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범위가 정말 대단했다. 또 지능적이며 이타적인 플레이로 수비수 몰이와 팀을 위한 플레이를 정말 잘했다. 그의 킥 능력에 대해 말하자면 각이 없어 어려워 보이는 공도 슈팅을 할 수 있었고, 약간의 틈만 있어도 각을 만들어 골을 넣었다 이러한 장점으로 그는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는 별명도 생겼다. 이런 플레이로 그 당시 꿈나무들의 우상이었고 70년대생 전설적인 공격수들인 앙리와 세브첸코는 그가 항상 본인들의 우상이라고 말한다.

반응형